성인 ADHD 사회 생존기/성인 ADHD 치료 일기

[성인 ADHD] 30살, 정신과에서 ADHD 진단을 받다.

latearly4am 2020. 9. 27. 13:49

 

 

내가 정신과 병원을 찾아간 것은 일 할 때 생각이 홍수 때문에 집중이 안되고, 이어서 일의 효율과 성과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몇년 전, 뉴스에서 성인 ADHD를 다룰 때 가려고 한번 정식으로 진단받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가게 되었다.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상담과 함께 ADHD 검사로 이뤄졌다.

 

검사 시작 전 검사 방법을 듣고는 내심 '만약 결과가 ADHD 가 아니면 어떡하지? 정말 의지박약일 뿐인가?' 라는 걱정을 했다.
일부로라도 잘 못해야 하는가 유혹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검사를 끝내고 이어진 상담에서

 

"ADHD 로 볼 수 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검사를 하면서 어느정도 느껴졌다.

'내 집중력의 한계가 오고 있구나',

'왜 자꾸 나는 잘못 누르는 걸까',
그리고..... '억지로 틀릴 수 있는 레벨도 아니구나.'

 

ADHD는 확실했다. 다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상담 하면서 이미 하위 00%를 찍은 다수의 항목을 보면서 조금은 안도했다. 병으로 진단받아 마음이 편해졌다. 이게 병이 아니라 정말 내 의지의 문제이고 성향적 문제라면... 이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었다.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난 언제가 집중력이 짧은 아이 였다. 과도한 행동을 하거나 선생님의 지시에 대놓고 벗어나는 일은 없었지만 친구 관계가 어려웠고, 늘 조용히 딴짓을 했었다. (수많은 낙서와 소설 끄적인 노트가 한 가득이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을 생각해도,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20분 내외. 20분 집중하고 30분 딴짓하고 다시 10분 공부하는 비효율의 반복이었다. 딴짓 하며 썼던 소설은 단편 2개 분량이 되었다. (내용이 유치찬란해서 도저히 공개할 수 없지만)

 

대학교에 가서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얻고, '디자인과'라는 특수성을 한껏 만끽했다. 앉아서 공부 해야하는 수업보다 내가 집중될 때 몰입해서 과제하고 수업시간에는 서로 크리틱 하는 방식의 수업이 잘 맞아 수업시간에 날아다녔다. 성적도 꽤 잘 나왔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들여 공부하고 외워야 하는 교양 과목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집중도 나의 의지로 되지 않고 마치 갑자기 불이 붙은 마냥 미친 듯이 하는 것에만 익숙하니 그저 억지로 앉아있는 시간만 길었다.

"누가 공부를 좋아서 하겠어. 그냥 하는 거지. " "아.. 시험 기간 집중 안돼." 라는 친구들의 말에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누구나 다 그렇다' 라는 말과 특수했던 디자인과의 환경으로 나는 첫번째 시그널을 놓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오니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되는 많은 것들을 잊었다. 약속된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회의시간에도 딴생각을 하다 중요한 안건을 놓치기 일 수였다.

실수가 반복되자 평가는 하락했다. 효율이 나쁘고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첫번째 직장에서 난 계속 시그널을 놓치고 있었다.

 

그저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나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갖은 방법을 써서 좋은 습관을 만들고 계속 긴장 한 채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몸부림 쳤다.

하지만 결과는 권고 사직이었다. (물론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진 결과였지만...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 확신한다.)

 

TV 에서 성인 ADHD 에 관련한 뉴스를 보기 전까지 나는 이게 병이라 인식하지 못했고, 병원을 가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으며, 계속 자신만을 탓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여기에 조울증까지 겹쳐져서 아주 스펙타클한 나날이었다)

 

 


 

 

가설이 맞다는 확인을 받자 울컥했다. 그동안 힘들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겉치레라도 감사했다. 검색을 통해 이리저리 알아보고 병원을 찾아가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내일 아침부터 약을 먹게 되었다. 어떤 변화가 생길지 두근거렸다. 가장 먼저 시도하는 약은 ADHD 치료제로 인터넷에서 익히 들어 익숙한 콘서타였다.

 

아침에 섭취하면 저녁까지 길게 효과가 나타날 거라는 설명에, 빨리 변화를 느껴 보고 싶은 마음을 다독이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좀 더 집중하고, 일을 잘 할 수 있을거다! 원하는 공부도 하고 정신 사납게 헤메지 않아도 된다!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